보물선과 암호화폐
지난 7월 14일 국내 유명 포탈 실시간 검색어에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신일코인’이 주요 검색어 상위권으로 랭크되었습니다. 신일그룹이라는 기업에서 울릉군 앞바다에서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배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돈스코이호는 1905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던 러시아 순양함인데 일본 해군의 공격을 받고 항복을 거부하다가 자체 침몰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쩌면 평범할 수도 있는 일반 전함인 돈스코이호가 이토록 유명한 이유는, 당시 배안에 200톤의 금괴와 5500상자의 금화가 실려있다는 것이 구전을 통해 알려지면서 입니다.
이를 현재 가치로 추산하면 약 150조원에 달합니다. 과거 1999년에도 동아건설이 대규모 보물섬 탐사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돈스코이호의 존재 여부만 확인하고 결국 동아건설은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침몰한지 백년이 넘은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울릉도 앞바다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왜 하필 보물선인가?
보물선은 주식시장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테마 중에 하나입니다. 돈스코이호 보물선 발견소식이 알려지면서 코스닥 상장사인 제일제강의 주가가 지난 17일에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제강의 최대주주가 신일그룹 대표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제일제강 주가는 불과 이틀만에 68% 급상승했습니다. 한국거래소는 제일제강을 투자 경고종목으로 지정하고 주가 급등이 계속되면 거래정지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3일뒤 신일그룹이 설립된지 한달밖에 되지 않은 곳이고 제일제강 최대주주가 아니라는 공시가 나오면서 주가가 이틀만에 급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융감독원에서도 “보물선 인양 사업과 관련하여 구체적 사실 관계 확인없이 소문으로만 의존하여 투자할 경우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라고 강력하게 경고하였습니다.
그런데 보물선 논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일그룹이 보물선에 담긴 금괴를 담보로 코인, 즉 암호화폐를 발행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름하여 신일골드코인(SGC) 입니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는 작년 말부터 이미 보물선 암호화폐를 발행된다는 소위 ‘찌라시’가 돌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암호화폐가 워낙 광풍인 때였고 보물선이라는 솔깃한 테마없이도 이슈가 터지는 시기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물선 코인은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왜 하필 암호화폐인가?
신일그룹은 신일골드코인을 7월 30일 공개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신일그룹 홈페이지에 백서(White Paper)는 아직 없습니다. 백서 공개는 신일골드코인 공개 당일 보물선 인양을 위해 마련한 울릉도 베이스캠프에서 이루어진다고 밝혔습니다. 백서를 깃허브나 공식 홈페이지가 아닌 울릉도에서 공개한다니, 과연 신일골드코인이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가 맞는 건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신일골드코인은 이미 6월 11일부터 25일까지 1차 판매, 즉 프라이빗 세일이 완료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가격을 보면 3000만개 발행에 1개당 50원의 가격입니다. 프라이빗 세일을 끝내고 2차 세일로 넘어가면서 코인 가격을 100원으로 두배 올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암호화폐 발행은 미래 계획에 근거하긴 하지만, 전혀 터무니없지는 않습니다. 스타트업의 사업계획서와 같이 암호화폐 발행기업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자료가 바로 백서입니다. 그런데 신일그룹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결국 투자자들은 백서조차없는 신일골드코인에 15억이라는 돈을 투자한 것입니다.
또한 신일그룹에 따르면 신일골드코인 상장 일정도 9월말로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상장하는 곳이 자신들이 만든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입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요?
국내에도 이미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글로벌 거래소들이 버젓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를 놔두고 자기들이 만든 거래소에서만 거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또다시 신일골드코인이 과연 암호화폐가 맞는지, 그냥 본인들이 만들어낸 ‘가상증표’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신일그룹은 백서도 없는 코인을 발행하면서 이미 15억이라는 돈을 모집했다고 밝히고 자기들 마음대로 코인의 가격을 결정, 조정하며 곧 추가적인 판매를 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종합해볼 때 결국 이번 사건은 ‘더 큰 바보이론’을 내세운 무식하고 대담한 ‘다단계 사기’라고 결론내릴 수 있었습니다.
암호화폐, 성장통일까? 죽이기일까?
일각에선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을 두고 “제 2의 인터넷 혁명이다. 미래산업 지도를 바꿀 핵심기술이다”라는 찬사가 쏟아집니다. 모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병통치약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사기꾼들은 바로 이러한 ‘뭔가 그럴듯한 점’을 노리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는 일반인들이 기술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들이 많습니다. 이미지는 좋지만 아직 미완의 기술이며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이 바로 암호화폐의 현주소입니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는 작년부터 이러한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다단계로 사기꾼들이 암호화폐 시장에 기웃대고 있다”고 말이죠.
블록체인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반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완의 그릇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이라는 10살짜리 어린아이에게 이러한 시련은 꽤 가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데 블록체인은 이런 종류의 사기에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블록체인의 나이는 어리지만 태어날때부터 숙명적으로 세상의 모든 세력들과 맞서 싸운 글로벌 전사라 할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그동안 수많은 내외부 공격을 버텨내며 지금까지 꿋꿋이 살아남았습니다. 신일코인과 같은 무식하고 허접한 공격 따위는 쉽게 물리칠수 있는 내공을 가지고 있습니다. 훗날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위대한 기술이 되는 날엔 이와같은 해프닝을 회상하며 웃음짓는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