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카트와 소매종말 이야기
예전에는 온 가족이 마트에 나와 한가하게 물건을 고르며 쇼핑을 하는 것이 가족 행사이자 즐거운 나들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마트 쇼핑이 보편화된 오늘날 마트에서 저렴한 물건을 고르고 계산한 뒤에 이고 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생계를 위한 고단 노동이지 더 이상 예전만큼 낭만적인 일이 아닌 듯 하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마트를 꼭 방문하지 않아도 각종 마트 홈 딜리버리나 인터넷 상점 슈퍼마켓 코너를 이용하여 야채, 고기, 가공식품 같은 신선식품을 집으로 바로 배송하는 서비스가 많이 보편화 되었다.
이런 서비스는 배달문화가 발달한 한국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에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주목 받는 기업은 인스타카트(Instacart)이다. 식품계의 우버라고 불리는 이 회사는 2012년에 설립 되어 2014년경 미국 15개 도시에서 서비스되었으나 2017년 에는 25개 주 1,200개 도시로 서비스 지역이 대폭 확대되었다. 이 회사는 최근 주식가치가 42억 달러 (약 4조6900억 원)까지 상승했으며 수천 억 원대의 벤쳐캐피탈 투자를 이미 수 차례 유치했다.
실제 서비스 사례를 보면 매우 단순하기 그지없다. 이용자는 인스타카트 어플에 들어가서 자신의 주소를 입력하고 근처에 있는 월마트, 훌푸드, 크로거와 같은 마트를 선택한다. 그리고 구매할 신선식품들을 카트에 넣은 뒤 결제하고 물건을 받고 싶은 시간을 선택하면 지정된 시간에 요원이 해당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배달해준다. 연회비 149달러를 내면 35불 이상의 오더는 무료로 이용가능하며 비회원은 건당 5.99달러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출처 : 인스타카트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단순한 식품 배달 회사가 어떻게 이렇게 빠른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익히 알다시피 미국 교외지역에서는 차량이 없이 생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매번 마트를 방문할 때마다 제법 먼 거리를 이동해서 양껏 들고 와야 하는데 차량이 없거나 몸이 불편한 경우 대신 물품을 배송해줄 업체가 꼭 필요하다.
인스타카트의 성공을 시작으로 아마존 프레시, 포스트메이츠, 구글 익스프레스 같은 신선식품 배송업체들이 생겨나 시장 생태계를 점차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맥도날드, 도미노피자 등의 프랜차이즈 음식을 전문적으로 배달하는 우버이츠(UberEats)와 같은 서비스도 생겨나고 있다.
미래에는 이런 서비스를 5G 자율주행자동차와 접목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스타트업 ‘로보마트(Robomart)’는 자율 주행 솔루션을 확보하여 기존에 사람이 배송을 하던 서비스를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최근 2018 CES쇼에 소개된 이 서비스는 자사의 자율주행 자동차에 각종 신선식품을 싣고 스마트폰으로 주문한 사람의 집에 직접 찾아가 물건을 판매하는 과정을 시연했다.
로보마트가 직접 24세~44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자체 설문조사에서는 85% 이상의 여성들이 온라인으로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것을 꺼린다고 언급하고 있다. 보관이나 배송상태에 따라 식품이 쉽게 변질될 수 있는데 신선도가 생명인 신선식품의 상태를 직접 보고 주문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로보마트의 경우 차량에 실려있는 식품을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고 물건을 고를 수 있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해준다.
CES2018에 소개된 로보마트의 모습 출처 : 로보마트
우리가 전통적으로 마트에 직접 방문하여 물건을 보고 고르는 구매 행태가 스마트폰의 보급과 발전에 따라 배송대행으로 변형되었다면 이제는 자율 주행차의 발전에 따라 배달부마저도 없어질 상황이다. 기술의 발전이 더욱 빠르고 편리하고 저렴한 방식으로 소비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소매종말(Retail Apocalypse)라고 불릴 정도로 전통적인 유통구조를 빠르게 파괴하고 있다.
토이저러스가 2017년 9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1948년 설립된 이 회사는 최저가 인터넷 상점의 여파로 심각한 경영난을 맞았고 결국 미국 735개 매장과 영국 100여개 매장의 문을 닫았다. 크레딧 스위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올해 8,000개가 넘는 오프라인 상점이 추가로 문을 닫을 예정이다. 사람들의 소비 패턴이 온라인 구매로 점차 이동하는 형국에 역설적으로 인스타카트와 같은 배송대행 서비스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비스를 이어주는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