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 잡아 먹을 것인가? 잡아 먹힐 것인가?
새로운 은행의 탄생
2015년 11월말, KT를 주축으로 우리은행, 한화생명 GS리테일 등의 컨소시엄과 카카오를 주축으로 한국투자지주, 국민은행 등의 컨소시엄 2군데가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받았습니다. 2017년 4월 3일, 국내 최초의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를 필두로 이후 카카오뱅크가 출시되었습니다. 국내에는 개념조차 생소한 인터넷전문은행이 금융권에 핀테크 열풍을 등에 업고 은행권의 메기를 자처하며 야심차게 등장하였습니다. 무려 23년만에 새로운 은행이 인가되었으니 금융권, 특히 은행권에서는 그야말로 대사건이었습니다.
세계최초의 인터넷전문은행은 1998년에 출범한 미국의 SFNB(Security First Network Bank) 입니다. 당시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은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도입 초기 취약한 인지도와 낮은 기술력으로 인해 고객의 호응을 받진 못하였습니다. 이후 다수의 인터넷전문은행이 타금융사에 인수, 합병되는 등 시련의 시기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본격적인 대중화와 고객 친화적인 차별화 전략이 먹혀 들면서 기존 은행들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현재 20여개가 넘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운영되고 있으며 2014년 3월을 기준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이 전체 은행 대비 차지하는 자산 비중이 약 4%에 달하고 있습니다. 당기순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로 기존 은행과 비교하여 효율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인터넷전문은행들은 Ally Bank(GM), BMW Bank(BMW) 등 비금융사가 설립 운영을 주도한 것이 특징입니다.
국산 디지털 메기의 등장
국내 인터넷전문은행의 출범은 기존 은행업계에 충분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카카오뱅크는 출시 당시 은행업의 대표적인 적폐 서비스라 지적받는 ‘공인인증서’를 완전히 걷어낸 새로운 인증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지난 1월에는 완전 비대면 방식의 전세자금대출을 선보이기도 하였습니다. K뱅크 또한 4~10등급 대상 신용대출 비중이 45%에 달하는 등 기존 은행권에서 대출이 불가능한 저신용자들을 품는 포용적 금융을 시도하였습니다.
다만, 출범초기 계획하였던 e커머스 정보, 휴대전화 납부정보 등 소셜 신용평가 모형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었고 기존 은행과 마찬가지로 예대마진에만 몰두한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여년 넘게 고착화 되어있던 은행권과 다른 차별화 전략으로 이들을 긴장시킨 것은 분명합니다. 현재 신규 고객유치율이 주춤해지긴 했지만 출범 당시 인터넷을 기반으로 젊은 층을 공략하여 급속도로 고객을 확보해나가는 모습은, 그동안 대형 시중은행들이 느껴보지 못했던 섬뜩한 공포였을 것입니다.
도약을 위한 필수조건
인터넷전문은행 성장의 가장 큰 걸림둘은 은산분리 규제입니다. 현행법상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10%, 의결권 지분은 4%까지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K뱅크가 신용대출상품 판매를 자주 중단하는 주된 이유입니다. 대출상품이 많이 팔릴수록 자본금을 그만큼 확충해야 하는데, K뱅크의 경우 대주주인 KT의 지분율이 10%로 묶여있다 보니 증자에 문제가 생기고 결국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은산분리는 재벌로 대변되는 대기업 주도의 특수한 국내 경제구조에 기인합니다. 은산분리는 자회사인 은행이 모회사인 재벌의 사금고화가 되는 것을 막는 최후의 보루인 셈입니다. 그러나 은산분리의 대원칙은 지키되 기존 은행업의 혁신을 장려할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은행업과 인터넷전문은행업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존의 은행과 다른 전혀 다른 형태의 금융업인데도 불구하고 “은행”이라는 고정된 프레임에 갇혀 더 큰 혁신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은행법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전문은행 특별법을 제정하여 이를 소유할 수 있는 대주주를 요건을 제한하고 엄격한 관리감독 통제하에 지배 금융사가 모회사에 자금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는 것 입니다.
은행업은 국내 대표적인 규제산업중에 하나입니다. 정부의 허가가 없으면 은행업은 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24년간 정부의 호위 아래 은행업계는 “그들만의 편한 리그”가 되어 버렸습니다. 혁신은 내부에서 발화되기 어렵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과 같은 메기를 풀어놓았으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우리의 몫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겨우 풀어놓은 디지털 메기가 사멸하지 않고 자생할 수 있도록 국민적 지원과 응원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는 다양한 물고기가 살 수 있는 건강한 금융생태계로 반드시 우리에게 보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