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시들해진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지금도 매력적인 이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짧디 짧았던 부흥기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우리 머리 속에 각인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2016년 7월 한국의 주말을 속초로 달려가게 했던 ‘포켓몬고(Pokémon Go)’가 각인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포켓몬고의 열풍으로 9시 뉴스에는 속초에서 모바일을 손에 쥐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들이 소개되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포켓몬고를 다양하게 패러디했어요. 애플코리아에서 선정한 ‘2017년을 빛낸 최고작 – 게임인기 차트’에서 포켓몬고가 1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당시의 위상을 알 수 있죠. 이런 트렌드는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포켓몬고는 출시 6달만인 2016년 12월기준으로 누적 매출 9억 5천만 달러(약 1조 1천억 원), 5억 건 이상의 누적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어요. 자연스럽게 포켓몬고의 기반기술인 증강현실과 증강현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가상현실 기술이 주목 받았답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의 부흥기를 이끈 포켓몬고(출처: Pokémon go)
인기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2017년 1월 포켓몬고가 정식 출시되었는데요. 이용자 수는 빠르게 급감했습니다. 와이즈 앱에 따르면 2017년 1월 719만 명의 MAU를 기록했으나, 2017년 7월에는 134만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포켓몬고의 사용자가 줄어들면서 포켓몬고로 대표되던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에 대한 관심도 조금 멀어지게 되었다는 점이죠. 비록 5G 시대 핵심 콘텐츠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지만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의 선봉장인 인공지능과 블록체인게 한 수를 양보한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매력적인 기술로 바라보고 있는데요. 그 이유를 차근차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지금도 매력적인 이유
1. 인간을 보완하는 기술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과 함께 우리 사회를 강타한 것은 바로 직업이 사라진다는 언급이었습니다. 제46차 세계경제포럼은 2020년까지 일자리 중 710만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고, 영국의 BBC는 자국 내 직업의 35%가 20년 안에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몇 년 뒤 모습을 예상하기보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더 실감할 수 있는데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사업자인 아마존은 물류센터에서는 로봇 키바(Kiva)를 도입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 기반의 알고리즘으로 짜여진 로봇 키바를 도입한 결과 아마존은 물류센터 운영비용 20% 절감, 재고 보관 공간 50% 증가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상 물류센터의 물류 운반에서 이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죠.
하지만 DHL 네덜란드 물류센터를 살펴보면 아마존의 물류센터와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DHL 네덜란드 물류센터는 실제 물류 작업을 진행하는 인원에게 증강현실 헤드셋을 나눠주고 자신의 업무에서 효율을 낼 수 있도록 보완해주었습니다. 특정 발송 물품을 집어 들었을 때 어느 하역장으로 이동시켜야 하는지, 어디로 배송해야 하는지, 취급 유의해야 할 물품인지 등에 대한 정보를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제공해주었죠. 사람의 손에서 발송 물품에 대한 정보를 담은 종이와 체크해야 할 펜을 대체하자 효율이 증대한 것입니다. 물론 아마존과 DHL 네덜란드의 물류에 한정된 사례만을 비교해 로봇은 인간을 대체하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인간을 보완한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경우 헤드셋을 착용하는 사용자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 사람 없이도 운용될 수 있는 로봇이나 인공지능과는 근본적인 차별점이 있다는 점은 눈 여겨 볼 만 합니다.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로봇 키바(左)와 DHL 네덜란드 물류창고에 보급된 증강현실 헤드셋(右)(출처: CNet(左), DHL(右))
2. 인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기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인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치매환자분들과 저시력자분들에게 활용되는 모습을 보면 그러한데요. 치매환자분들의 경우에는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노인방문간호회사인 퀀텀케어(Quantum Care)는 치매치료에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했는데요. 이른바 ‘가상현실 치매 치료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노인 요양시설을 방문한 치매 노인분들에게 자연위주의 가상현실 영상을 보여주자 안정적인 심리를 유지했고, 심지어 과거의 기억을 회상해내기도 했어요. 가상현실을 체험하던 할머니 중 한 분은 해변가를 한참 바라보더니 “내가 태어났던 곳과 비슷하다”는 말을 뱉어냈습니다. 가족분들 입장에서는 인상적인 반응이지 않을 수 없겠죠.
또한 저시력자의 경우에는 증강현실 기술을 도입해 시력을 향상시키는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이사이트 글래스(eSight Glasses)라는 디바이스 회사는 의미 있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출산을 앞둔 저시력자인 케이시(Kathy)가 이사이트 글래스를 활용해, 출산 후 자신의 딸의 얼굴을 마주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답니다. 사실 시각장애인 분들 중 14%가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분들이라면, 나머지 86% 분들은 저시력의 정도가 심해 사물의 분간이 어려운 분들이라고 하는데요. 이 말은 즉 증강현실 기술을 사용하면 시각장애인의 86% 분들에게는 케이시의 경우처럼 시력을 향상시켜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삼성전자도 2017년 8월에 이사이트 글래스와 유사한 증강현실 디바이스에서 사용 가능한 시각보조 어플리케이션인 릴루미노(relumino)를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할 경우 교정시력이 최대 0.8~0.9까지 개선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다양한 의료 산업에 적용되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나 고소공포증과 대인기피증 등 여러가지 포비아를 극복하게 하는 등 인간의 신체적, 심리적 한계를 극복하게 도움을 주며 삶에 희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치매 노인분(左)과 저시력자분(右)에게 활용되는 가상현실, 증강현실(출처: Tribemix(左), eSight Glasses(右))
3. 인간을 꿈 꾸게 하는 기술
마지막으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인간을 꿈 꿀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는 의미인데요. 제가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에 대해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할 때 항상 마지막에 보여드리는 영상 하나가, 이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CF 영상이기도 합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사실 타조는 날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가상현실 헤드셋을 착용하게 된 타조가 하늘을 나는 가상현실을 경험하고, 비행하겠다는 꿈을 꾸게 됩니다. 연습도 하고요. 비록 선천적인 몸의 구조로 인해 비행하지 못할 운명이었던 타조는 그렇게 연습을 통해 결국 비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결국 인간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편의성보다는 시공간의 한계로 인해 체험할 수 없었던, 제공받을 수 없었던 정보의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뇌는 생각보다 멍청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착시효과에 쉽게 속죠. 그리고 뇌가 느끼는 감각이 달라지면 신체도 변하게 됩니다. 실제로 UC버클리 대학의 분자생물학과 교수팀은 실험을 통해, 정상적인 쥐와 후각이 마비된 쥐에게 동일한 음식을 먹였을 때 후각이 마비된 쥐의 체중이 16~26%까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인지 시스템이 신체 시스템을 지배한다는 이야기이죠. 어찌보면 앞서 말씀 드렸던 타조의 사례와 동일해보이지 않으신가요? 결국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날지 못하는 저희가 날 수 있는 꿈을 꾸고, 연습해 결국 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꿈을 꾸게 하는 기술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타조도 비행하는 꿈을 꾸게 만들어 주는 가상현실(출처: 삼성전자)
커넥팅랩 민준홍